미성의 교실

마음을 밝히는 미성 박인혜의 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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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의 시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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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인혜 시인 작성일17-11-19 11:39 조회127회 댓글0건

본문

 

시의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대상과 현상을 만납니다.


 이런 대상과 현상의 모든 것을 세계라고 합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집니다.

 

 

그럼, 대상과 현상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한 편의 시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막연한 질문에 시인도 독자도 당황하는 때가 많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것들은 그것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 방법을 구체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존 시인들의 작품을 수없이 읽고, 외우고, 자기의 작품을 끊임없이 쓰고, 지우다 보면 표현 방법이 저절로 터득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 멀고, 그것은 지도 없이 세계여행을 떠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시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정리하여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부끄럽지만 나의 시작 과정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나의 해답일 뿐, 정답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듯이 시를 쓰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인용한 모든 시는 나의 시 중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나의 시작 과정을 밝히는 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용한 시들은 나의 삶 속에서 캐낸 평범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를 도구로 한 것들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에 남은 이야기들을 시로 바꾸어 보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지 모릅니다.


       


 평범한 것이 아름답고, 쉬운 것이 옳다는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시는 쉬워져야 합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달나라나 별나라의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의 이야기가 드러나야 됩니다.  


이 글은 시를 전문으로 쓰는 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삶 이야기를 시로 바꾸어 보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을 함께 가 보자는 생각에서 정한 것입니다. 평범한 마음으로 평범한 대상들을 가슴에 담아 시로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여행 준비

 

 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이론을 조금은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여행 준비. 이 장에서는 시의 개념, 표현 방법, 대상인식 등에 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1. 시의 개념

 

예술은 어떤 대상(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 언어를 도구로 하는 것이 문학, 문학 중에서 운율을 강조하는 것이 운문, 운문의 대표적인 형태가 시입니다.

 

 

다시 정리하여 보면,

 

 

시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상은 시의 소재, 즉 글감을 말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떤 대상이 당신에게 감흥을 주었다면,


그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시를 읽으면서 시의 여행을 준비해 봅시다.

 

 

 하루에 한 번쯤은 혼자 걸어라.
 세상 이야기들 그대로 놓아 두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라.


 말이 되지 말고, 소가 되어
 나에게 속삭이며 혼자 걸어라.


 괴로움이 나를 따라 오거든
 내가 나에게 술도 한잔 받아 주고
 나를 다독이며 혼자 걸어라.


 나무도 만나고, 바람도 만나면
 마음은 어느 사이 푸른 들판


 잊었던 꽃들이 피어나고
 고향 내음새 되살아나
 내 가슴을 울리는 나의 콧노래


 하루에 한번쯤은
 이렇게 나를 만나며 살아가거라.

 

 

   - 하루에 한 번쯤은-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먹고사는 것,


혼자가 되어 한 번 걸어 보십시오. 발은 걸으라고 조물주가 만들어 준 것.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남이 아니라 당신 자신과 함께 걸어 보십시오.


가슴에 엉켰던 것이 녹아 내리고,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새롭게 눈을 떠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멀리 보이던 것들이 가까이 보이고, 가까이 보이던 것들이 멀리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만나는 모든 것들을 가슴속에 그대로 담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과도 말없는 말로 가슴을 열 수가 있습니다. 

 

 

 풀과 나무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 보십시오. 들판의 풍경들을 가슴 속에 그려 보십시오.


하늘을 향해 외쳐 보십시오.


당신 자신과 해가 지도록 얘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거기에 상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진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당신에게 감흥을 준 모든 사물과 현상, 즉 대상이 시의 소재입니다. 


인식은 대상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합니다.


이것이 시의 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시에서의 언어를 시어라고 하는데, 이 시어들의 어울림이 운율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은 우리의 가슴에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크나큰 즐거움일 수도 있고,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는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슬픔일 수 있고, 눈가에 맺히는 몇 방울의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울부짖게 하는 함성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까요?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진실이란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러나는 사랑, 미움, 아픔, 기쁨, 슬픔을 거짓없이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 그리움, 방황, 울분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왜, 우리는 진실을 표현하려 하는 걸까요?


말을 바꿔 보면, 왜, 우리는 밤을 새워 시를 쓰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시를 읽는 걸까요?


시를 쓰는 이유는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시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박석구의 시작법 연재 1

 

 표현과 감동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신적 즐거움과 영혼의 정화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맑고, 밝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에서의 웃음은 기쁨을 밝히는 것, 울음은 슬픔을 걸러 내는 것,


외침은 분노를 털어 내는 것. 결국, 웃음도, 울음도, 외침도 마음을 정화시키는


정신적 배설작용입니다.

 

 

좋은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좋은 그림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 지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그윽해 진다고 말합니다.


결국 모든 예술은 우리의 삶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들입니다.


 


시를 쓰는 일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시는 삶을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시는 삶의 충분 조건일 뿐이지, 필요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삶을 위해 시가 필요한 것이지, 시를 위해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돌에다 이름을 새기기 위해
 사는 것이 정말 아닙니다.


 삶의 목적은 삶
 
 죽어 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삶. 3 -

 

 

우리는 지나치게 목적을 중시하고, 과정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과정, 그 자체입니다.


삶이 다른 목적을 가질 때, 그 삶은 진실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삶을 엮어 가는 수단으로써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진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까요? 아닙니다.


그 진실을 실감나게 표현했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2. 표현 방법

 

 표현 방법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한 내용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묘사와 진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묘사는 대상의 현상이나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말하고,


진술은 그것들을 묘사하지 않고, 직접 상대방에게 들려주듯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시는 이 두 방법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 모습을 드러내야 됩니다.

 

 

 묘사의 종류에는 서경적 묘사, 심상적 묘사, 서사적 묘사로 나눌 수 있고,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경적 묘사는 보고, 느낀 것을 직접 그려내는 묘사이고,


심상적 묘사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고,


서사적 묘사는 사건이나 현상을 시간의 연속을 통해 그려내는 것입니다.

 

 

 독백적 진술은 인식 주체의 독백, 고백, 반성, 회고, 기원 등을 진술하는 것이며,


권유적 진술은 동조, 참여, 각성을 청하는 인식의 주체의 주장을 내세운 진술이며,


해석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이해, 해석, 비판, 판단을 드러낸 진술입니다.

 

 

 너무 말이 많아 미안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나누는 작업이 아니라 모으는 작업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묘사와 진술의 종류를 아는 것은 시의 틀을 짜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설명했습니다.

 

 

 시에서의 묘사와 진술은 시적 자아에 의해 드러납니다.

 

 

시적 자아란 시 속에서의 인식 주체를 말합니다.


인식 주체는 1인칭인 '나'입니다. 소설에 빗대어 본다면 서술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시에서 주인공일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관찰자일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전지적 제삼자일 수도 있습니다.

 

 

 햇빛 부스러지는 아침
 금낭화 속에서 기어 나오는
 일곱 점박이 무당벌레


 하, 요놈이, 어젯밤
 산을 그렇게 울리었구나.


      -산 29 -

 

 

1연이 묘사이고, 2연이 진술입니다.


1연은 한 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고,

 

 

2연은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적 자아를 통해 상대방에게 들려주듯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묘사와 진술을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분하는 것은 묘사가 중심이 되었는가,


진술이 중심이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것뿐입니다. 

 

 

 * 만나는 대상에서 느끼는 것을 가슴속에 그려봅시다.

 

 

만나는 대상에 대해 생각한 것을 가슴에 대고 속삭여 봅시다.


이 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한 대상을 그려보는 것이 묘사의 시작이고,


인식한 대상에 대해 속삭여 보는 것이 진술의 시작입니다.

 

 

구태여 길게 묘사하고, 길게 진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오히려 좋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상을 본 후, 곧 바로 느끼고, 곧 바로 생각하는 직관,


대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상인식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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